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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집품들을 소개합니다 My Assential

kimshoko 2024. 5. 14. 23:22

  방을 정리하고 있다.

  문득, 방은 단순히 내가 지내는 공간의 역할을 넘어서서, 나의 인생을 함께하는 생명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이 아파트에 이사 온지도 벌써 4년 가까이 됐다. 군대에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고 나는 이 방에서 최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방만큼 나의 인생에서 함께하는 것은 물건이다. 방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문득 정말 오래 함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물건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 난 뒤에 항상 그 가성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든다.

  물건에는 추억이 깃든다. 정리하면서 오랜만에 만나는 물건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니면 평상시에도 나와 항상 함께하지만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들이 눈에 띄게 된다. 정리란 그런 것이다. 내가 언제, 어디서 구매했는지, 어떤 순간을 그 물건과 함께했는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글로 정리해본다. 이건 내가 애정하는 수집품들을 소개하는 글이다. GQ 매거진의 My Assential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백산안경 윕스 투톤 그레이와 그 케이스

  백산안경은 2019년 1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에 부모님이 선물로 사주셨다. 나는 아직까지도 구매 날짜가 적힌 개런티 카드를 가지고 있다. 멋있어서 뭔가 버리기 싫은 디자인이다. 그때 아마 나는 뭔가 멋있는 안경을 사고 싶었다. 기리보이같은 래퍼들이 쓸 것 같은, 가격대도 좀 있고 의미 있는 것 말이다. 무턱대고 가로수길 매장에서 구매한 투톤 윕스는 오히려 요즘 더 마음에 드는 것 같다. 그때는 약간 힙합스러운 느낌으로 이 안경을 쓰고 다녔다면, 지금은 클래식하게 이 안경을 쓴다.

  여담으로 나는 이 안경을 세번이나 부러트렸다. 고등학교때 노래방에서, 군대에 있을때 정비고에서, 안경점에서. 이제는 원래 프레임 가격보다 수리하는데 쓴 비용이 더 많아졌다. 때문에 나와 5년 넘게 함께한 안경이지만 여전히 새것같은 느낌이다.



마인드 컴바인드 2집 ’CIRCLE‘ LP


  진보와 피제이의 합작 그룹 마인드 컴바인드의 2집 LP에는 둘의 사인이 담겨있다. 앨범 발매 당시, 이태원해방촌에 있는 웰컴레코즈에서 릴리즈 이벤트를 했었다. 그때 LP를 사고 사인을 받았다. 진보님은 내가 졸업한 상문고등학교의 20년 학교 선배이자 상문고등학교 힙합 동아리 ‘흑락회‘를 만든 분이기도 하다. 그때 진보님이 후배를 만나서 반갑다고 버드와이저 맥주도 사주시고, 옛날 재밌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나는 아직까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LP를 모으고 모아 거의 50장 가까이 되었다. 이것보다 더 희귀하고 비싼 레코드들도 소장하고 있지만, 이게 나한테 가장 소중하다.

  사인에는 진보: ’21기 김광민 자랑스럽다!’ 피제이: ‘광민! 흑락회 포에버’ 라고 적혀있다.



Supreme 20 s/s My Bloody Valentine hoodie


  2020년 슈프림과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콜라보했던 후드티이다. 정면에는 mbv의 전설적인 명반 loveless의 앨범 커버가 프린팅 되어있고, 등에는 loveless와 슈프림의 로고가 작게 프린팅되어있다. 아마 이 후드티는 작년 즈음 번개장터에서 구매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주 입는 후드티는 아니다. 가끔 락 공연을 보러 갈때 입고 가곤 한다. 슈프림은 중학교때부터 나의 아이돌과도 같은 스트릿 브랜드였고, mbv도 한동안 엄청나게 빠졌던 슈게이징 밴드다. 이 후드티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어떻게든 내 손에 넣고 싶었다. 그래서 매물을 계속 검색하다가 올라온 것을 바로 구매했던것 같다. 나름 상징성이 있는 옷이라,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해본다. 물론 그래도 팔 일은 없을거다.




Visvim 20 a/w varsity jacket


  전역한 뒤 깬 적금으로 가장 먼저 구매했던 옷이다. 비즈빔같은 끝판왕 브랜드를 하나 가지고 싶었다. 머드다잉된 색감이나 헤어리한 질감이나 등판의 빈티지한 프린팅까지 너무 마음에 드는 자켓이다. 구매한 후로부터 지금까지 아주 잘 입고 다니고 있다. 그리고 비즈빔을 입고 다니면 뭔가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다. 뭔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렇다. 최근 가장 아끼고 있는 옷이다.


Fullcount Real Killer 1108

  자켓이 비즈빔이라면 제일 아끼는 바지는 이놈이다. 일본 복각 데님으로 유명한 풀카운트 사에서도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워싱진’을 테마로 만든 라인 ‘리얼 킬러’ 데님이다. 짐바브웨에서 생산한 초장면사로 만들어졌으며, 실제로 몇년 이상 착용한 것 처럼 자연스럽고 멋있는, 그리고 정말 폭력적인 워싱이 담겨있다. 이 바지는 입었을때도 정말 멋있지만, 그냥 책상 위에 두고 디테일을 하나하나 파고들다 보면 감동하게 된다. 절묘하게 조금씩 뜯어진 체인 스티지, 부위별로 조금씩 다른 실의 색감이나, 심지어 단추까지도.

  뭐, 그런데 남들이 보기엔 그냥 청바지겠지 생각했다. 결국 이런게 다 자기만족이겠지? 나는 내 옷이 마음에 든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주면 됐다.


’내여귀‘ 2기 블루레이 홍보 포스터. 아마 13년쯤

  갑자기 너무 오타쿠같은 물건이 등장했다. 처음으로 아키하바라에서 구매했던 <내여귀> 포스터이다. 이전 글에서도 쓴 적 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니다가 라디오회관 5층에서 (확실하지 않다) 중고 포스터를 판매하는 가게를 발견했는데 거기서 2500엔 정도에 구매했던 것 같다. 아마 2기 방영 후 블루레이를 홍보하는, 2013년쯤의 홍보 포스터인것 같다. 나는 그때의 아키바의 광경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한켠에 남아있다. 말 그대로 가짜 기억, 노스탤지어이다. 그 기분 좋은 느낌을 계속 기억하고 싶어서 내 방문에 붙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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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은 소중하다. 한동안 나는 그런 생각만 하고 살았다. 물건은 그저 도구이지만, 개인의 추억이 깃든 순간 자신의 인생 일부가 된다. 그저 계속 우리 곁에 있다가도 떠나갈 수도 있다. 또는 이제 나에게 더이상 예전의 의미를 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중요하다. 정리에서도, 인간 관계에서도, 무엇이든지 말이다.